▲축구국가대표팀의 공격수 이청용. © News1

국가대표팀 감독은 항상 시간에 쫓긴다. 소집 기간이 짧은 것, 눈앞의 성적에 연연해야하는 입장 모두 시간과 관련 있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특별한 상황만도 아니다. 네덜란드 대표팀을 이끌던 명장 거스 히딩크도 원하는 성적을 빨리 내지 못해 미처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때문에 긴 호흡과 장기적인 안목으로 자신이 원하는 로드맵을 차근차근 진행하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껏 대부분의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들이 그러했다. 그런데 다행히 울리 슈틸리케 현 감독은 천천히 멀리 보고 가는 느낌이다.

따뜻해진 여론 그리고 든든한 성적과 함께 순항하고 있는 슈틸리케호의 선장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또 '장기 포석'을 뒀다. 꼭 필요한 선수를 살리기 위한 처방전이 내려졌다.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이 2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3명의 대표팀 명단을 발표했다. 대표팀은 오는 12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미얀마와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5차전을 치르고 17일에는 라오스와 원정 6차전을 갖는다.

진행된 4경기를 모두 승리로 마무리하면서 조 1위를 달리고 있는 한국은 11월 2연전 결과에 따라 잔여 2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조기 최종예선행을 결정지을 수 있다. 향후 여유로운 행보를 위해 슈틸리케 감독은 정예멤버를 소집했다. 거의 모든 유럽파를 불렀다. 그 속에는 토트넘 경기 도중 부상을 당했던 손흥민 그리고 크리스털 팰리스에서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는 이청용도 이름을 올렸다.

슈틸리케 감독은 "최근 손흥민이 토트넘 훈련에 합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도 "하지만 정확한 몸 상태를 체크해야한다"는 말로 아직은 100% 컨디션이 아니라는 뜻을 에둘러 전했다. 이청용은 주전에서 밀린 모양새다. 그렇다면 결국 현재 최고의 컨디션을 보이는 이들을 뽑겠다는 원칙과는 다소 어긋나는 결정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그 이유에 대해 "손흥민을 미얀마전에 선발로 내보내기 위해 부른 것은 결코 아니다. 크리스털팰리스에서 많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이청용을 호출한 것도 같은 이유"라면서 당장을 위한 결정은 아니라는 견해를 에둘러 전했다.

그는 "내년 3월 레바논과의 월드컵 예선을 치러야한다. 3월은 K리그가 막 시작하는 시점이라 국내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의 경기력이 올라오지 않았을 때다. 하지만 유럽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은 한창 시즌 중이라 감각이 유지될 시기"라면서 "당장은 도움이 못 되더라도 내년 3월에는 우리에게 보답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어서 (손흥민과 이청용을)불렀다"고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물론 손흥민이나 이청용은 뉴 페이스가 아니다. 수시로 대표팀을 드나드는 핵심 선수로, 기존 선수들과의 호흡이나 슈틸리케 감독의 철학을 공유하기 위한 결정이라 보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배려한 것은 역시 '장기적인 포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10월 2연전 때도 비슷한 수를 두었다. 소속팀에서 잘 뛰지 못하던 구자철과 지동원을 불러들였는데, 당시 슈틸리케 감독은 "소속팀 경기에 꾸준히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를 대표팀에 선발한다는 것은 분명 위험부담이 있다. 그러나 믿음이 강하게 형성돼 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발탁했다"는 말로 기회를 줬다. 선택은 적중했다.

구자철은 2차예선 최대 분수령이었던 10월8일 쿠웨이트와의 원정경기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면서 1-0 승리를 견인했다. 구자철은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고 대표팀은 승점 3점과 함께 중요한 공격자원을 되찾았다. 10월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자메이카전에서는 지동원이 4년 만에 A매치 골을 터뜨리면서 슈틸리케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이번 명단에서 손흥민, 특히 이청용을 발탁한 것은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경기에 뛰지 못하면서 위축되어 있을 이청용이 대표팀에 와서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고 떨어진 실전감각을 올릴 수 있는 발판으로 마련하겠다는 복안으로 읽힌다.

매 경기가 급급한 상황에서도 보다 먼 앞을 내다보고 있는 슈틸리케 감독. 구자철과 지동원을 살린 슈틸리케 감독의 눈이 이제 이청용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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