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2014년 말 각 1억갑·2400만갑 불법 조성"

외국계 담배제조사 2곳이 담뱃세 인상 직전에 낮은 세금을 미리 납부한 재고를 대량으로 불법 조성했다가 담뱃세 인상 후 높은 가격으로 도매상 등에 판매하는 일종의 사재기(재고 쌓기) 수법으로 2000억원 이상의 세금을 탈루했다는 감사 결과가 나왔다.

이같은 탈세를 포함해 2015년 1월 1일 담뱃세 인상 과정에서 담배 제조·유통·도소매상 등이 챙긴 담뱃세 인상차익이 모두 8000억원에 육박해 그만큼의 세수가 손실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건강 증진 등의 이유로 대폭 올린 담뱃세의 수혜를 제조·유통사들이 적지 않게 본 셈이다.

감사원은 22일 이같은 내용이 담긴 '담뱃세 등 인상 관련 재고차익 관리실태' 감사 결과를 공개하고, 각각 세금 1691억원과 392억원을 탈루한 필립모리스코리아와 BAT코리아에 대해 가산세를 포함해 각 2371억원, 550억원씩을 부과하도록 과세당국 등에 요구했다. 아울러 이들에 대한 고발조치도 요구했다.

기획재정부 등에는 앞으로 담뱃세 인상차익을 국고로 온전히 환수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하도록 요구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 2014년 9월 11일 담뱃세 인상안을 확정한 뒤 국회 본회의 의결 등을 거쳐 2015년 1월 1일부터 담뱃세를 1갑(20개비)당 1591.9원 인상(담뱃값 2500원→4500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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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세법 등에 따르면 제조된 담배는 제조장에서 반출(제조장 외의 장소로 이동하는 사실행위)될 때를 기준으로 담뱃세 납세의무가 생긴다.

담배 제조사들이 담배를 일단 반출해 그 시점을 기준으로 담뱃세를 확정·납부한 뒤 재고로 보유('반출 재고')하고 있다가 담뱃세가 인상된 이후에 도매상 등에 판매하면 담뱃세 인상차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다.

평상시에는 미리 담뱃세를 납부한 반출 재고를 많이 보유할수록 금융비용 면에서 손해를 보는 만큼 최소 규모로 유지하는 게 통상적이다.

지난 담뱃세 인상의 경우 담배 제조사들이 2014년 12월 31일을 기준으로 확보한 '반출 재고'(담뱃세 기납부)는 모두 담뱃세 인상차익을 얻을 수 있는 물량이다.

기획재정부가 담뱃세 인상 정부안을 발표한 다음날인 2014년 9월 12일 담배 제조사가 통상적 반출량(2014년 1~8월 월평균 반출량의 104%)을 초과해 반출하는 것을 금지하는 '매점매석 고시'를 시행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필립모리스코리아는 정부의 담뱃세 인상안 발표를 전후해 반출 물량을 갑자기 크게 늘려 연말 기준으로 1억942만갑의 반출 재고를 확보했다. 담뱃세 인상 요인이 없던 직전 2013년 말 반출 재고량(445만갑)의 24배에 달하는 규모다.

특히 이렇게 비정상적인 대량 물량을 반출하는 과정에서 불법 반출 행위를 저질러 세금을 탈루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필립모리스코리아는 2014년 연말 기준 반출 재고량 중 5055만갑의 경우 2014년 9월 3~6일 제조장 인근에 단기 임차한 창고에 트럭을 이용해 옮겨놓는 방식으로 '가장 반출'해 조성했다.

같은 제조장(창고도 포함) 내에서의 반출은 '미납세 반출'에 해당해 담뱃세를 징수하지 않는데도 반출로 처리한 뒤 담뱃세를 낸 것이다.

이렇게 임시 창고로 옮겨진 '가장 반출' 재고는 이후 제조장 창고로 되돌아와 재포장 등을 거쳐 이듬해 높은 가격으로 '실제 반출'됐다.

또한 담뱃세를 내지 않은 상태에서 별도의 제조장 창고에 정상 보관 중이던 5568만갑은 반출되지도 않았는데 전산으로만 허위 입력·반출하는 방식으로 반출 재고로 불법 조성됐다.

회사는 이렇게 불법 조성한 재고 1억 623만갑을 2015년 1~6월에 인상된 가격으로 실제 반출·판매해 담뱃세 인상차액 1691억원을 탈루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나머지 300여만갑은 정상적인 반출 재고로 판단했다.

BAT코리아 역시 담뱃세 인상안이 발표되자 담배판매법인(같은 계열사)에게 임대해준 제조장 창고의 일부 구역으로 담배를 반출한 것처럼 수차례 전산상으로 반출 처리해 담뱃세를 미리 확정·납부했다.

특히 BAT코리아는 매점매석 고시 시행 시각인 9월 12일 낮 12시에 앞서 당일 새벽부터 3190만갑을 급하게 허위 반출했다. 이 가운데 925만갑은 아예 생산되지도 않은 '유령 담배'였다.

이렇게 확보한 반출 재고 물량은 이후 실제 반출·판매 등을 거치면서 2014년 말 기준으로 2463만갑이 마련됐다. 2013년 말에 반출 재고가 전무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BAT코리아는 이를 2015년 1월부처 인상된 가격으로 실제 반출·판매해 담뱃세 차액 392억원을 탈루했다.

감사원은 허위로 반출 재고를 조성한 두 회사에게 탈루 세금 및 과소신고 가산세를 더해 각각 2371억원, 550억원을 부과·징수하는 한편 두 회사를 조세범칙 혐의 및 매점매석 고시 위반 등에 따라 고발하도록 기획재정부·행정자치부·국세청 등에 요구했다.

이에 대해 필립모리스코리아 관계자는 통화에서 "외부 독립 창고간의 제품 이동을 마치 제조장으로 재반입한 것으로 보고 '가장 반출' 했다고 하는 감사원의 주장은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또 '전산상 허위 반출' 지적에 대해서도 "적법하게 세금을 납부했으며 세금 탈루와 관련이 없다"고 말해 향후 징수 과정에서 법적 분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KT&G·도소매상 등도 담뱃세 인상차익 챙겨

감사원이 두 담배 제조사의 허위·불법 반출을 통한 탈세로 지목한 2083억원 외에도 지난 담뱃세 인상 과정에서 국가나 지자체에 돌아오지 못하고 새어나간 담뱃세 인상차액은 수천억원에 이른다.

감사원은 2014년 12월 31일 기준 담배 제조사와 유통사, 도·소매상 등이 보유하고 있던 담배 재고분을 약 4억 9865만갑으로 집계했다.

5억갑에 이르는 담배가 이튿날인 2015년 1월 1일부터 오른 가격으로 판매됨에 따라 담뱃세 인상차익 약 7938억원이 국가나 지자체에 귀속되지 못한 채 제조·유통사 등의 주머니로 들어간 셈이다.

세부적으로는 2개사의 탈세액 2083억을 비롯해 KT&G가 보유 중이던 반출 재고(1억 9963만갑)를 통한 인상차익 3178억원, 그외 도매상 1034억원, 소매상 1594억원 등이다.

그중 KT&G의 경우 매점매석 고시 시행 직전 이들 간 1억100만여갑을 반출·유통했으나 조사 결과 늘어난 반물 물량이 지점·지사 등 유통단계로 실제 반출됐고, 2014년 말 기준 반출 재고(1억9963만갑)도 2013년 말(1억9844만갑) 수준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불법적인 반출 재고 조성에 따른 탈루나 매점매석 고시 위반 사실도 없었다는 게 감사원의 설명이다.

연말 반출 재고가 2억갑에 육박하는 것은 다른 제조사들과는 달리 유통을 겸하고 있어 반출 후에도 전국 유통망에 남은 물량이 많기 때문으로 파악됐다.

감사원은 다만 KT&G가 담뱃값 인상 과정에서 공정거래법을 위반해 소비자의 이익을 침해할 소지가 있었는지 여부 등에 대해 추가 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와 관련, KT&G는 2015년 4월 재고차익 논란이 불거지자 차익 3300억원을 향후 4년간 사회에 공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감사원은 이처럼 대규모 담뱃세 인상차익이 제조·유통사 등의 수익으로 돌아가는 것은 관계당국의 입법대책이 미비한 때문이라며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담뱃세 인상시 이같은 현상이 충분히 예상되는 데도 인상 전후의 차익을 국가와 지자체 세입으로 환수하기 위한 근거조항 등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은 500달러 이상의 인상차익이 있는 자, 일본은 1000갑 이상의 재고 소지자에게 신고·납부 의무를 부과하는 등 입법을 통해 담뱃세 인상차익을 국고에 귀속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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