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평화 이바지…노벨평화상 수상
![]() |
올해 90세로 현직 최고령 국가수반인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이 다음달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다.
폴란드 태생으로 나치의 박해를 피해 20대때 유대땅을 밟은 그는 독립전쟁부터 여러차례의 전쟁을 치르며 오늘의 이스라엘이 있게한 '건국 1세대'의 상징적 인물이다.
시오니즘을 펼친 '건국의 아버지' 벤 구리온에게 발탁된 페레스는 신생국의 해군을 만들고 정보부, 운수부, 재무부, 외무부 등 주요 장관은 물론 1977년 첫 총리 재임을 시작으로 총리만 3번 역임했다.
1952년 29세의 젊은 나이로 국방부 부국장에 임명된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과잉 공급으로 폐기처분 된 미국 비행기들을 수리해 재활용할 수 있다고 구리온 총리를 설득, 방위산업체 '베덱'을 설립해 이스라엘 최고의 항공그룹 중 하나로 성장시켰다.
이후에도 국방예산의 상당부분을 연구개발에 투자하면서 훗날 핵심 국방기술의 상용화를 통해 경제 성장을 도왔다.
"변하고 또 변하자"를 입버릇처럼 말하는 그는 자투리 예산으로 이공계 인재들을 프랑스로 보내 당시로써는 무리라는 평가를 듣던 원자핵 기술을 개발, 1960년 이래 단 한 차례도 고장이 나지 않은 핵기술을 선보였다.
두 번째로 총리직을 맡고 있던 1985년부터 재무부 장관으로 재직한 1990년까지는 지나친 민간부문 규제로 인해 발생한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안정화 정책을 펼치며 공공부채를 줄이고 자본시장에서의 정부역할을 조정했다.
이와 함께 기술력과 기업가 정신을 강조해 이스라엘이 세계 최고의 벤처기업 국가로 발돋움 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며 '산업의 아버지'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이스라엘은 현재 전 세계에서 창업 기업 수가 가장 많은 나라이다.
외무장관도 3차례 역임한 그는 외교 분야에서도 큰 업적을 이뤘다.
두 번째 외무장관이던 지난 1994년에는 전년인 1993년 팔레스타인과 오슬로 평화협정을 체결해 중동 분쟁에 큰 변화를 이끌어낸 공로를 인정받아 고(故) 이츠하크 라빈 전 총리, 야세르 아라파트 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활발한 외교활동을 펼쳤다.
총리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이스라엘에서 대통령은 사실상 명예직에 불과하다. 이런 이유로 대개 정당의 색채가 적은 도덕적인 인사가 대통령으로 선출돼왔는데 페레스 대통령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스라엘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2007년 이슬람 국가인 터키에서 국회 연설을 했고 이란의 핵 시설 공격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나타내 우방인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2008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에 대해서는 정당성을 주장해 이슬람 국가들의 비난을 샀으며 2009년에는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와의 토론 도중 에르도안 총리와 설전을 벌인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난 8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재한 합동 기도회에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함께 참석해 "중동의 평화를 이루는 일은 의무이자 거룩한 임무"라며 "부모로서 어린이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페레스 대통령이 자국민의 사랑을 많이 받은 것은 그의 업적에 대한 평가 외에도 지난 2000년에 대선에서 그를 제치고 당선된 모셰 카차브 전 대통령이 성추행 혐의로 불명예 퇴진한 것에 대한 반사이익도 다소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아울러 노벨평화상 수상을 도운 오슬로 협정은 평화에는 기여했지만 테러 증가의 원인이 되기도 해 많은 이스라엘인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