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파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08년 2월 10일 밤, 퇴근을 해 늦은 저녁식사를 하면서 TV를 보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국보 1호 숭례문이 불길에 휩싸인 장면이 TV 화면을 통해 방영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현실이란 느낌이 들지 않아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관련 뉴스 속보가 실시간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화재 신고를 받은 소방 당국은 소방차 30여대, 소방관 100여명을 현장에 출동시켰고, 불씨를 제거하기 위해 일부 현판을 잘라내고 물과 소화 약제를 뿌리고 화재 진압에 총력을 다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다음날인 2월 11일 오전 들어 2층 누각 전체로 불길이 번지고 화재 발생 4시간 만인 오전 1시께 2층이 붕괴됐다. 이어 바로 1층에 불이 붙어 새벽 1시 55분 즈음에는 숭례문의 고주와 평주, 주심도리를 비롯한 기본 뼈대들과 누각을 받치고 있는 석반을 남긴 채 모두 붕괴된 후 5시간 만에 2층 누각의 90%, 1층 누각의 10%가 소실됐다. 숭례문은 5년 뒤인 2013년에야 겨우 옛 모습을 회복했지만 복구를 두고 끊임없는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숭례문 방화 사건은 당시 일산에서 철학관을 운영하던 채종기씨(68세)가 택지개발에 따른 본인 소유 토지(건물)에 대한 보상액에 불만을 갖고 이같은 방화를 저질렀다. 그는 앞서 2006년 4월 26일에도 같은 이유로 창경궁에 불을 질러 징역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300만 원을 선고 받았다. 다시 말해 문화재 방화가 숭례문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본래 종묘에 불을 지르려고 했는데 경비가 삼엄해 표적을 숭례문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문화재를 대상으로 계속해서 방화한 까닭은 경비가 허술해 접근하기 쉽고 인명 피해가 나지 않으며 상징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경찰조사에서 진술했다.
또한 당시 현장 검증 자리에서 “그래도 인명 피해는 없었다. 문화재는 복원하면 된다"라는 망언을 해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방화범 채 씨는 문화재보호법위반으로 징역 12년형이 구형되었으며 1심 판결에서 징역 10년을 선고 받고 형이 과중함을 들어 항소했으나 2009년 8월 31일 서울고등법원은 항소를 기각하고 징역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그는 감옥에서 죄수들 사이에서도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심한 냉대를 받았다는 일화가 전한다.
15년 후 비슷한 사건이 브라질에서도 발생했다.
2년 전 폰세카 후니오르라는 남성이 브라질 대선 불복 폭동 때 국회의사당에 전시돼 있던 축구 스타 네이마르의 사인 공을 훔쳤다.
2023년 1월 8일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서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2022년 대통령선거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대통령궁·국회의사당·대법원 청사에 난입해 기물을 부수며 난동을 부렸다.
대선에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누르고 승리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이 2023년 1월 1일 취임한 지 일주일 만에 벌어진 사건이다.
폰세카 후니오르는 국회의사당에서 네이마르의 친필 사인이 있는 축구공을 몰래 챙겨 갔다가 20여 일 뒤 당국에 돌려줬다.
그가 훔친 사인 공은 네이마르의 유년 시절 소속팀이었던 산투스 FC가 창단 100주년을 기념해 2012년 하원에 기증한 것이다.
이에 대해 브라질 검찰은 "명백한 범죄 행위"라며 징역 17년형의 중형을 구형했다. 그는 변호인을 통해 "굉장한 혼란 속에서 사인 공을 보호하기 위해 잠시 맡아둔 것이다. 곧바로 적절한 장소에 가져다 놓으려고 했으나 보안 요원들에 의해 방해받았다"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묵살했다.
브라질 연방대법원은 그제 특수절도·특수재물손괴·문화재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네우송 히베이루 폰세카 후니오르에게 징역 17년을 선고했다.
15년이라는 세월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두 사건을 보며 우리나라 사법부의 '참을 수 없이 가벼운' 형량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채 씨는 자신의 화풀이 대상으로 대한민국 국보 1호에 불을 질러 전 국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안겼고, 후세에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히고도 10년 형을 받았다.
반면 폰세카 후니오르는 자국의 축구스타 사인 볼을 훔친 죄로 17년 형이라는 중형을 선고 받았다.
두 사건의 범행 대상과 죄의 경중(輕重)이 ‘하늘과 땅’ 차이인데도 우리 사법부가 내린 형량은 브라질에 비해 오히려 훨씬 미약했다.
브라질 사법제도가 무조건 옳다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 사법부가 범죄를 대하는 태도에는 문제가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