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비 증액 등 명시 요구에 한국 거부
한국 대규모 재정이 수반되는 사안이어서
신중한 검토를 위한 시간 더 필요하단 판단
문서 꺼리는 트럼프 스타일 반영 추정도
한국 입장서도 전략적으로 나쁘지 않아

이재명 정부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과 같은 문서 결과물이 나오지 않은 배경에는 지난달 이뤄진 관세 협상 내용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반영할지를 두고 양측의 견해차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27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한미는 지난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의 정상회담을 전후해 회담 결과물을 담을 문서의 문구를 조율해왔다. 

하지만 현재까지 성명이나 공동언론발표문 등 형태의 합의된 문서는 나온 바 없다.

앞선 2017년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간의 회담, 2022년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간의 회담 등 최근 한미 간 첫 정상회담에선 통상 공동성명이 나오곤 했다.

하지만 이번 회담에서 문서가 나오지 못한 것은 지난달 30일 한미가 합의한 관세 협상의 내용을 세부적으로 정상회담 결과에 반영하는지를 두고 양측에 이견이 결정적인 이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3500억달러 규모로 발표된 한국의 대미 투자와 관련해 대출 보증과 같은 투자의 실제 이행 방식 등에 대해 정교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이에 따라 구체적 방안을 문안에 담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미국 측에서는 한국이 명확한 타임라인과 이행 규모·방식 등을 문서화하기를 원했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대규모 재정이 수반되는 사안이어서 신중한 검토를 위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판단 아니었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영접나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기자들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영접나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기자들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측은 또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춘다는 관세 합의 내용을 이번에 문서로 명시해 달라는 한국 측의 요구를 거부했다고 전해진다.

안보 분야에서도 미국 측은 한국의 국방비, 미국산 무기 구매 증액 명시를 원했으나 한국이 수용하지 않으면서 추후 실무 협의로 넘기는 쪽으로 정리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또 한국이 원하는 원자력협정 개정을 포함해 전반적인 양측의 이익 균형을 맞추는 과정에서 이경 조율이 더 필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측이 '숫자'를 많이 요구했던 것 같다"며 "미국이 3500억달러 가운데 조선으로 들어가는 1500억달러를 제외한 2000억달러 부분을 구체적으로 언제까지 얼마를 어떻게 쓸 거냐고 요구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한 당국자는"양측이 지금 서둘러서 하기보다는 조금 시간을 갖고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는 대미 투자 패키지 등 관세 협상 내용을 구체화하기 위한 후속 협의를 계속 이어가고 있으며 안보 분야도 한미안보협의회(SCM) 등을 계기로 논의가 이어질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문서 없는 정상회담은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취향 때문이라는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각국 정상들과 회담 후 문서 형태 결과물을 내놓은 경우가 많지 않았다. 추후 행동반경 제약을 초래할 수 있는 문서에 얽매이기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당국자는 "현실적으로 한국이 EU나 일본 이상의 좋은 협상 결과물을 얻어내기 쉽지 않고, EU 등의 대미 협상 동향을 살펴 일정한 기준선을 잡아둔 상태로 협상을 이어가는 게 현실적"이라며 "정상회담 문서가 없는 것이 전략적으로는 나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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