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용복 편집국장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는 속담처럼, 같은 내용이라도 말하는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보복이 아니며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며 “완전한 청산은 보수가 도덕적으로 부활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정 대표는 한 발 더 나아가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해 “국민의힘은 ‘우리가 잘못했다’는 진정 어린 사과부터 해야 한다. 언제까지 내란당의 오명을 끌어안고 살겠느냐”면서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날 여야 대표가 대통령과 한 자리에 모여 어렵사리 협치를 위한 손을 맞잡은 지 하루 만에 사실상 야당 대표를 겨냥한 선전포고성 발언인 것이다.

특히 여야가 '민생경제협의체' 구성에 합의하면서 그간 극한대립을 이어오던 정국이 모처럼 협치 분위기로 전환되는 게 아니냐는 기대감이 나온 터라 정 대표의 발언이 불러온 파장은 컸다.

정 대표의 강경 발언이 이어지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고성을 지르며 거세게 반발했다. 일부 의원들은 자리를 박차고 본회의장을 퇴장했다. 장동혁 대표는 “거대 여당 대표의 품격을 기대했는데 너무 실망스러웠다”고 혹평했다.

정 대표는 이날 연설에서 '내란'을 모두 26번 외치는 동안 '협치'는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전날 이재명 대통령이 여야 대표 오찬 회동을 통해 "더 많이 가진 여당이 양보해야 한다"며 여야 간 협치 분위기 조성을 강조했음에도 여당 대표는 마이웨이로 '대야(對野) 강공' 모드를 이어간 것이다.

대통령 앞에서는 야당 대표와 손을 잡는 이벤트를 벌이고, 돌아서선 야당은 안중에 없는 날 것 같은 말을 쏟아낸 정 대표에겐 애초부터 협치는 머리 속에 들어 있지 않았음이 명백해 보인다.

나아가 이는 자당 출신 대통령의 노력과 권고를 걷어차 버린 행위로, 향후 당정 간 균열을 예고하고 있어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걸림돌이 될 우려마저 없지 않다.

비록 지금 여당이 과반을 훌쩍 넘는 의석을 갖고 있지만 정권 초기 국정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야당과 협력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직전 윤석열 정부에서 여야 간 극한대립으로 국회와 대통령 사이에 법안을 놓고 핑퐁게임을 벌이다 결국 파국으로 치달은 바 있다. 집권당인 민주당이 이를 반면교사로 삼지 않고 숫자만 믿고 밀어붙인다면 이재명 정권의 성공은 장담할 수 없다.

정치판에서 강성 발언을 내뱉고 선동적인 행위를 일삼는 인사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지지자들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어 향후 정치를 펼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정치발전이라는 대의(大義)에 역행하는 소인배적 작태에 불과하다.

반대로 상대를 인정하고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인사는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 지지자들의 속을 시원하게 풀어줄 무엇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는 협치를 위한 지름길이요 정치발전을 위한 필수 요소다. 정치에는 사이다 대신 막걸리가 더 필요하다.

협치의 길은 멀고도 고되다. 그런 까닭에 어지간한 노력으로는 달성할 수 없다. 반면 갈등과 대립은 세 치 혀끝에 매달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다. 우리 정치권이 이러한 사실을 가벼이 여기고 함부로 상대를 해하는 말을 내뱉어 왔기에 갈등의 골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정치권에서 강성 발언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또한 이번 정 대표의 대표연설에서만 국한할 수만은 없다. 여든 야든 이러한 전철을 되풀이 해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주는 무게를 무겁게 느낄 때 비로소 '협치'는 시작된다.

모용복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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