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기지국 들고 수도권 돌며 해킹…소액결제로 피해 확산
상품권 현금화 맡은 조력자, "서로 모르는 사이" 주장
경찰 “중국 지시자 존재 정황…조직적 범행 가능성 추적 중”

KT 이용자 수백명의 휴대전화에서 무단 소액결제를 유도한 이른바 ‘KT 소액결제 해킹 사건’의 피의자들이 법원에 출석하며 “시키는 대로 했다”고 반복 진술했다. 경찰은 중국에 본거지를 둔 조직이 배후에 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수원지법 안산지원은 18일 오전, 정보통신망법 위반과 컴퓨터 등 사용사기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중국 국적의 A(48)씨와 B(44)씨에 대한 영장실질심문을 열었다.
법정으로 향하는 길, A씨는 “누구의 지시였나”, “수도권을 노린 이유는 무엇인가” 등의 질문에 일관되게 “저도 시키는 대로 했어요”라고만 답했다. 함께 출석한 B씨는 끝까지 침묵을 지켰다.
A씨는 지난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경기 광명, 서울 금천, 인천 부평, 경기 부천·과천 등 수도권 서부 지역을 승합차로 돌며 불법 소형 기지국 장비(일명 ‘펨토셀’)를 이용해 KT 가입자의 스마트폰을 해킹한 뒤, 수십만 원 상당의 모바일 상품권과 교통카드 충전 등의 소액결제를 유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장비는 가정이나 소형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저전력 기지국으로, 반경 약 10m 내 통신을 가로채는 기능을 한다. A씨는 체포 직후 경찰에 범행을 자백했다.
B씨는 A씨가 해킹을 통해 결제한 모바일 상품권 등을 현금화한 혐의로 함께 입건됐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한국어가 유창한 반면, B씨는 한국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해 중국어로만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태다. 두 사람 모두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일용직 노동자로, 서로는 “모르는 사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지난달 27일부터 31일 사이 새벽 시간대 광명시 일대에서 시작된 시민들의 신고를 바탕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서울, 인천, 경기 일대에서 비슷한 피해 사례가 잇따랐고, 경찰은 A씨가 지난 16일 중국에서 입국하자 인천공항에서 곧바로 체포했다. 같은 날 B씨도 서울 영등포구에서 붙잡혔다.
이들은 범행 동기에 대해 “중국에 있는 윗선의 지시를 따랐다”고 진술했다. 특히 A씨는 “최근 중국에서 만난 C씨라는 인물에게 지시받았다”며 C씨의 신상 일부를 경찰에 제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현재 C씨를 이 사건의 실질적인 주범으로 보고 그의 신원을 추적 중이다.
경찰이 집계한 피해 규모는 지난 15일 기준 200건, 약 1억2000만원 수준이다. KT 자체 피해 집계는 278건, 1억7000만원으로 파악됐다. 다만 A씨가 단독으로 고도화된 해킹 장비를 확보하고 그 작동 방식을 숙지해 활용했다는 점에서, 범행이 조직적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수사 관계자는 “피의자들은 통신·IT 관련 종사 경력이 없다”며 “제3의 인물이 장비를 제공했거나 실행 지시를 내렸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두 사람에 대한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를 근거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며, 구속 여부는 늦은 밤이나 이튿날 오전 중 결정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