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동 부국장

22년 만에 성덕대왕신종이 다시 울렸다. 국립경주박물관 종각에는 771명의 국민이 모여, 신라 천년의 시간을 관통해 전해진 장엄한 종소리를 직접 귀에 담았다. 시민과 관람객들은 숨죽인 채 종의 울림에 귀를 기울였고, 이날의 순간은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되새기고 미래 세대에 전할 새로운 과제를 확인한 역사적인 순간이 되었다.

성덕대왕신종은 높이 3.66m, 무게 18.9t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와 정교한 문양은 우리나라 범종 예술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신라 조형예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국보 제29호로 지정된 이 범종은 우리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문화재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그동안 균열 우려와 자연재해의 위협 속에 타종은 엄격히 제한됐다. 1992년까지 제야의 종으로 울리던 그 소리는 1993년부터 멈췄고, 일반에 공개된 것은 2003년이 마지막이었다. 이번 공개 타종은 무려 22년 만에 다시 열린 ‘시간의 문’이었다.

성덕대왕신종은 경덕왕이 부왕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발원했으며, 실제 완성은 혜공왕 24년인 서기 771년에 이뤄져 30년간 제작됐다. 종의 몸체에는 비천상이 새겨져 있으며, 윗부분에는 연꽃과 용뉴(龍鈕)가 장식돼 있다. 맑고 장중한 소리는 천년이 지난 지금도 울려 퍼져 ‘천상의 음악’이라 불릴 만큼 아름답다.

경주박물관은 이번 행사를 재현에 그치지 않고, 정밀한 과학 조사와 학술적 연구를 병행했다. 타종 전후의 정밀 촬영, 진동 주파수 측정, 종의 맥놀이 현상 파악 등은 범종의 현재 상태를 진단하고 보존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특히 올해 조사는 종소리 자체의 변화를 과학적으로 확인하는 데 집중되었으며, 향후 2029년까지 정밀 조사와 심포지엄이 이어질 예정이다. 천년의 종이 또 다른 천년을 향해 울릴 수 있도록 과학적 근거와 체계적 관리가 마련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공개의 상징성은 ‘국민 참여’에 있다. 신청자 3800여 명 중 추첨으로 선정된 771명의 일반인이 현장을 지켰다. 771이라는 숫자는 성덕대왕신종이 완성된 해, 즉 신라 혜공왕 7년(서기 771년)을 뜻한다. 종소리는 특정 연구자나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민과 함께 나누어야 할 유산이라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천년 전 장인들이 남긴 예술과 기술이 오늘 우리의 가슴에 다시 스며들었을 때, 문화유산은 살아 있는 현재가 된다.

그러나 감동과 동시에 과제도 분명하다. 현재 야외에 노출된 채 전시되고 있어 태풍, 지진, 화재 등 자연재해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실제로 2016년 경주 지진, 2022년 태풍 힌남노 등은 지역에 큰 피해를 주었고, 그때마다 종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이미 걸쇠와 용뉴의 구조적 약점을 지적하며 긴급한 보존 대책을 요구해왔다. 노출 전시로 인한 부식, 해충 피해, 온습도 변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문제다.

이런 점에서 국립경주박물관이 밝힌 신종관 건립 계획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신종관은 천년의 소리를 지키는 현대적 보호막이 될 것이다. 개폐 가능한 공간에서 최적의 음향 환경을 조성해 매년 한 차례 국민에게 원음을 들려주는 구상은 문화유산의 보존과 향유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길이다. 또한 종을 종걸이에 매단 채로 두지 않고 바닥에 내려 용뉴를 보호하며, 종 상부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설계하는 방안은 국민에게 새로운 관람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이번 행사에는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주낙영 경주시장, 철학자 도올 김용옥 등이 함께했고, 한국전통춤의 거장 이애주 선생의 무용 공연도 곁들여졌다. 종소리와 춤사위가 어우러진 순간, 성덕대왕신종은 더 이상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 숨 쉬는 예술이었다. 문화유산은 보존만이 아니라 새로운 해석과 감동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연결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보여준 자리였다.

성덕대왕신종이 다시 울렸다는 것은 우리가 문화유산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이자, 국가적 차원의 책임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천년의 유산은 국가의 품격이며, 국민의 자부심이다. 이제 보존과 활용을 병행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22년 만에 다시 울린 종소리는 우리에게 물음을 던진다. 앞으로의 천년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신종관 건립은 그 답의 첫걸음이다. 울림은 단지 청각적 경험이 아니라, 후대에게 물려줄 문화적 울림이어야 한다.

성덕대왕신종의 장엄한 소리는 우리에게 말한다. “지켜야 할 것은 소리만이 아니라, 소리를 가능하게 한 우리의 문화적 뿌리”라고. 천년의 종소리가 깨어난 지금, 우리는 새로운 천년의 길목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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