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규 부국장(상주담당)

추석은 본래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풍성한 음식을 나누며 정을 쌓는 시간이다. 그러나 올해 밥상 앞 대화는 예년보다 훨씬 무겁게 흘렀다. 정치·경제·생활 전반에 드리운 불안이 국민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전산망 화재로 드러난 디지털 정부의 허상, 국회의 다수당 독주, 그리고 트럼프발 관세 전쟁이 대표적이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전산망 사태였다. 우체국 택배가 멈추고 주민등록 발급이 불가능해지자 시민들은 '버튼 하나로 나라가 멈춘다'는 두려움을 실감했다. IT 강국을 자부했지만 실제로는 전산망 하나에 모든 것이 종속된 '모래성 구조'임이 드러난 것이다. 화려한 첨단의 외피 뒤에 숨어 있던 취약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정치권 상황도 국민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다수당의 독주와 끝없는 정쟁 속에서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대외적으로는 미·중 무역 갈등과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구조에서 이런 충격은 곧바로 가계 물가와 생활비로 이어진다. 송편·과일·고기 값이 세계 경제의 불안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셈이다.

추석 연휴 내내 비가 이어지고 거리는 을씨년스러웠다. 귀성길 도로 정체만이 국민들의 막힌 마음을 비추는 듯했다. 이 무거움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디지털 정부의 허점, 정쟁에 매몰된 정치, 외풍에 취약한 경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그 속에 담겨 있다.

상주의 추석 밥상도 예년보다 무거웠다. 그러나 민족의 명절이 지나면 다시 일상이 시작된다. 예로부터 상주가 오곡과 과일 등 가을걷이로 풍요를 알렸듯이 국민의 밥상도 넉넉해야 한다. 올해 무겁게 차려진 한가위 밥상이 내년에는 조금 더 가벼워지기를 바란다. 그 변화를 만들어내야 할 책임은 정치와 행정, 그리고 지역 사회 모두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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