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지역 밖은 협의 대상 아냐”… 서울시 조례 개정 적법 판단
145m 고층 건물 길 열려… 서울시 “녹지축 조성해 종묘 살릴 것”
국가유산청 “유네스코 등재 취소 우려… 관계기관과 대응 중”

서울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 맞은편 세운4구역 재개발 계획을 변경해 고층 건물 신축을 허용한 가운데, 이를 가능케 한 서울시 조례 개정이 적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에 따라 최고 145m 높이의 건물이 종묘 바로 맞은편에 들어설 수 있게 되면서, 종묘의 세계유산 등재 지위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6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서울시의회를 상대로 낸 ‘서울특별시 문화재 보호 조례 일부개정안 의결 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보존지역(문화유산 외곽 100m) 밖 개발까지 국가유산청장과 협의해 조례를 정해야 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서울시의 조례 개정이 법령 우위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로써 2023년 서울시의회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밖 건설공사까지 규제하던 조항(구 조례 19조 5항)을 삭제한 조치가 최종적으로 유효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서울시는 “20여 년간 정체돼 온 세운4구역 재정비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할 수 있게 됐다”며, “종묘를 더욱 돋보이게 할 대형 녹지축 형태의 공원도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문화재 행정당국과 유네스코 등재 지위 유지를 우려하는 측에서는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서울시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기간 중 기습적으로 39층, 40층 건물을 허용하는 고시를 냈다”며 “실로 깊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고층 개발이 강행될 경우 종묘가 유네스코의 ‘위험에 처한 유산’ 목록에 오르고, 나아가 등재가 취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허 청장이 세운4구역 재개발이 유네스코 등재에 미칠 영향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및 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결정(변경)’을 고시했다. 이에 따라 기존 종로변 55m, 청계천변 71.9m였던 건물 높이 상한은 각각 101m, 145m로 상향됐다. 청계천변 기준으로는 거의 두 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서울시는 세운4구역이 종묘에서 약 180m 떨어져 있어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100m 범위)에는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문화재청과의 협의 없이도 개발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유네스코는 종묘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당시 “인근 지역에서의 고층 건물 인허가가 경관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한 바 있다.
김재원 조국혁신당 의원은 “서울시가 국가유산청과 유네스코의 권고를 무시하고 건축을 강행한다면, 세계유산 지위를 잃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허 청장은 “100m냐, 180m냐, 혹은 그림자가 지느냐 마느냐가 핵심이 아니라, 우리가 미래 세대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지가 중요하다”며 “콘크리트 빌딩이 아닌 세계유산을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유산청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종묘가 세계유산 지위를 잃는 일이 없도록 유네스코와 긴밀히 협의하며 필요한 조치를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안은 과거 ‘왕릉뷰 아파트’ 논란과 유사한 세계유산 훼손 우려를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다.
문화재 보존과 도시개발 사이 충돌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른 가운데, 내년 7월 부산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이 문제가 공식 논의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