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세운4구역 재개발 높이 제한 완화 고시
“세계유산 경관 훼손” vs “20년 지연 사업에 동력”
국가유산청 “영향평가 필수”… 법적 공방 예고

세운상가에서 본 종묘 공원과 종묘. 연합뉴스
세운상가에서 본 종묘 공원과 종묘. 연합뉴스

유네스코 세계유산 종묘 맞은편에 초고층 빌딩이 들어설 길이 열리면서, 문화계 일각에서는 "제2의 왕릉뷰 아파트 사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및 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결정(변경) 및 지형도면’을 시보에 고시했다. 이에 따라 세운4구역 내 건물 높이 제한은 종로변 기준 55m에서 98.7m로, 청계천변 기준 71.9m에서 141.9m로 각각 완화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2004년 정비구역 지정 이후 13차례 문화유산 심의에서 높이가 50m 이상 축소되며 사업성이 떨어졌고, 이번에야 도심 기능과 환경의 조화를 고려한 조정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 지역은 종묘와 청계천 사이에 위치해 북쪽은 세계유산, 남쪽은 도시 재생 축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국가유산청은 고시 직후 "깊은 유감"을 공식 표명하며, 종묘 경관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WHC) 권고에 따라 대규모 개발 사업에는 ‘세계유산영향평가(HIA)’가 필수인데, 서울시가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시행된 ‘세계유산법’은 HIA를 법제화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해당 법에 따라 서울시가 영향평가를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눈 덮힌 종묘 정전 전경. 국가유산청 제공
눈 덮힌 종묘 정전 전경. 국가유산청 제공

종묘는 1995년 석굴암·불국사 등과 함께 한국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으며,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국가 사당이다.

서울시는 이에 대해 “세운4구역은 종묘로부터 약 180m 떨어져 있어 서울 기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100m) 외부에 해당하며, 법적 규제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또 “앙각(仰角) 기준을 확대 적용해 종묘 경관을 침해하지 않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화계에서는 도시개발이 세계유산 경관을 훼손한 해외 사례를 거론하며 신중론에 힘을 싣고 있다.

‘리버풀 해양 무역 도시’는 대규모 개발 사업으로 인해 2012년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으로 지정됐고, 결국 2021년 세계유산 지위를 상실했다. 오스트리아 ‘빈 역사 지구’도 2017년부터 위험 리스트에 올라있다.

국가유산청은 조만간 문화유산위원회와 유네스코 등과의 논의를 거쳐 대응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이번 고시로 정비계획을 확정했지만, 문화재 당국과의 갈등이 장기화할 경우 사업 추진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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