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동 부국장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포항 구룡포의 바닷바람은 유난히 짙은 향기를 머금는다. 그 향기의 주인공은 단연 과메기다. 바다 냄새와 햇살, 찬바람이 빚어낸 겨울 별미. 한입 베어 물면 짭조름한 감칠맛과 고소함이 어우러져 바다의 기억이 입안 가득 퍼진다.

포항 구룡포 과메기가 지난 10월 18일 첫 출하를 시작한 가운데, 오는 15일과 16일 구룡포에서는 해풍과 정성이 빚어낸 과메기를 기념하는 ‘제26회 포항 구룡포 과메기 축제’가 열린다. 지역 어민과 관광객이 함께 즐기는 축제는 포항 겨울의 대표적인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예전엔 과메기를 ‘바람이 만든 음식’이라 했다. 청어가 잡히던 시절, 어부들은 잡은 생선을 바닷가 처마 밑에 걸어두고 해풍에 얼렸다 녹이며 말렸다. 찬 바람이 들면 살이 단단해지고, 햇살이 어우러져 깊은 맛이 우러났다. 그렇게 만들어진 청어 과메기는 겨울철 귀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하지만 어획량이 줄고 꽁치가 대체품으로 등장하면서 지금의 ‘꽁치 과메기’가 세상에 나왔다.

요즘은 과메기도 변화의 바람을 맞고 있다. 예전처럼 바닷바람에만 의존하지 않고, 현대식 건조시설에서 일정한 온도와 습도로 관리하며 생산된다. 포항시는 지난해 450여 개소에서 ‘포항 구룡포 과메기’ 5770톤을 생산해 750억원의 소득을 올렸다. 전국 생산량의 90% 이상이 포항산이며, 이 중 80%는 구룡포, 장기, 호미곶 일원 특구지역에서 생산된다. 겨울철 별미 과메기는 철강 경기 침체 속에서도 포항 경제에 활력을 주는 효자 상품이다.

시는 위생적 생산과 판매 촉진을 위해 지난해 104억원을 투입해 연면적 5698㎡ 규모의 과메기 가공공장과 냉동 창고를 준공했다. ‘공장 과메기’불리는 이방식은 위생적이고 안정적인 품질을 유지 할수 있어 전국 어디서나 신선하게 즐길 수 있으며, 진공 포장 덕분에 사시사철 즐길 수 있지만 제철인 11월부터 2월까지가 가장 맛있다. 예전처럼 해풍에 말리던 풍경이 사라진 것은 아쉬운 일이나, 현대화된 생산 과정 덕분에 이제는 계절이나 날씨에 상관없이 누구나 포항의 겨울 맛을 즐길 수 있다.

또한, 과메기 연구센터와 해양전시관을 건립해 식품 개발과 관광자원 연계를 통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포항구룡포과메기문화관은 과메기의 전통과 현대를 잇는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문화관은 과메기의 역사와 제조 과정, 그리고 지역 어민들의 삶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다. 체험객들은 직접 과메기를 손질하고, 시식하며, 바다와 함께 자라온 포항 사람들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 과메기가 먹거리가 아니라, 지역의 문화유산이자 정체성을 담은 상징임을 보여주는 곳이다.

과메기의 인기는 이제 전국구다. 10년 전만 해도 경북 일원에서만 즐기던 과메기는 겨울을 대표하는 전국 음식으로 자리 잡았으며, 출향인들이 고향의 맛을 그리워해 주문하던 과메기는 이제 서울, 부산, 제주까지 손쉽게 배송된다. 덕분에 과메기는 ‘경북의 별미’에서 ‘대한민국의 별미’로 자리 잡았다. 과메기를 김에 싸고 마늘, 쌈장, 물미역을 함께 넣으면 바다가 쌈 속에 가득 담긴 듯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또 양파,쪽파, 물미역 등 각종 채소와 초장과 참기름으로 버무리면 상큼하면서도 고소하게 바다의 맛을 즐길 수 있는 겨울철 별미가 된다. 칼슘, 오메가3, 비타민 등이 풍부해 면역력과 피로회복에 도움을 준다.

올해 열리는 구룡포 과메기 축제는 포항구룡포과메기사업협동조합이 주관해 지역 특산물 과메기의 소비 촉진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마련됐다. 축제 기간에는 신선한 과메기 할인 판매와 과메기를 처음 접하는 관광객을 위해 김밥 시식 부스도 운영된다. 과메기가요제, 깜짝경매쇼, 과메기 먹고 힘자랑 등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즐길수 있는 다양한 참여형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관광객들은 과메기를 직접 손질하고 포장하는 체험도 즐기며, 바다 향과 함께 겨울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다.

세월이 흘러 바닷가에 펄럭이던 과메기 덕장의 풍경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길게 늘어선 과메기 덕장, 그 사이를 오가는 어민들의 분주한 손놀림은 이제 추억 속의 장면이 됐다. 하지만 그 기억은 여전히 포항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있다. 바닷바람이 차가워질수록, 그리움은 더 깊어진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과메기가 포항의 겨울을 대표하는 ‘정(情)의 음식’이라는 사실이다. 한 점의 과메기에는 바다를 품은 고향의 맛, 그리고 함께 나누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다.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과메기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해풍 대신 기계의 바람이 대신하더라도, 그 안에는 여전히 포항 사람들의 손맛과 정성이 살아 있다.

겨울 포항으로 떠나보자. 구룡포항의 찬 바람 속에서 과메기의 향기를 맡고, 따끈한 소주 한 잔과 함께 겨울의 깊은 맛을 느껴보자. 과메기 축제는 음식 잔치가 아니라, 바다와 사람, 그리고 기억이 어우러진 포항의 문화 축제다. 그곳에서 우리는 여전히 변치 않는 바다의 풍요와 사람의 온기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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