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태 공학박사·기업경영연구원장
기업경영을 자문하는 입장에서 자산 처분의 어려움이 크게 느껴질 거로 생각했다. 부동산과 설비, 그리고 재고 등을 매각해야 하는데, 누가 기다렸다는 듯이 매수에 나설 사람은 없을 것이고, 시장 상황에 따라 시간이 걸리거나 손실도 발생할 것이다. 무형자산 같은 경우는 가치 평가 자체가 무척 어렵고, 뭐, 물론 그런 것도 있지만, 관계자, 주주나 이사 그리고 직원들 간의 이해조정이 매우 중요하고 어렵다. 잔여재산 분배에 대한 의견 충돌이 있을 수 있고, 퇴직금 정산, 계약 종료 협의 등 조율해야 할 이해관계자가 많다.
복잡한 법적 절차 준수도 필요해 보이고, 해산 결의와 청산인 선임, 채권자 보호 절차 등 법에서 정한 절차가 많고, 단계마다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혹여나 채권과 채무 정리에 있어 숨겨진 채무나 미정산 세금, 미지급 비용 등이 있을 수 있어 예상보다 시간도 오래 걸린다. 세무 정산도 복잡한데, 잔여 재산 분배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금 처리도 머리 아프다. 부실하게 처리하면 종종 세무조사 가능성도 있다. 청산 완료까지는 사업자등록 폐업, 각종 인허가 반납, 등기 변경, 관할 기관 보고 등의 행정업무도 많다.
친구는 파이팅이 넘쳤다. 젊은 시절 대학을 졸업하고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 명은 학교에 계속 남아 공부하며 학위를 따고 연구와 후학양성을 목표로 삼았고, 다른 한 명, 친구는 사업가로의 길을 택했다. 대구 염매시장 앞 노전에서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우리의 불투명한 미래에 관해 토론했다. 당시 내가 준 조언은 조금만 더 늦게 사업을 하였으면 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35미터 높이의 산에서 바라 본 세상과 45미터나 혹은 50미터에서 바라 본 세상은 다를 것이다. 그러니 견문을 쌓고 창업하라고 조언했다.
그 친구는 한 번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나이가 35세, 즉 지금이 가장 좋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실패하더라도 그것을 경험 삼아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지금이 창업할 시기라고 했다. 잘 모르니까 다소 무모해 보였고 불안했다. 사업을 전혀 모르는 약관의 젊은 시절의 나로서는 그저 친구의 결정과 도전을 염려스럽게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친구는 사업수완이 좋았다. 아니, 더 사실대로 말하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나중에 대학강의 중 친구를 불러 후배들에게 남길 좋은 경험을 알려달라고 했다.
‘품질 및 생산관리’라는 과목에서 ‘명사 특강’이라는 시간을 만들었다. 그 친구의 창업과 기업경영, 그리고 꿈꾸는 산업화의 대한민국에 대해 강연을 요청했다. 모처럼 후배 앞에서 처음에는 긴장한 듯 목소리를 떨더니 이내 곧, 자신의 창업과 기업경영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저 친구는 운이 좀 따라서 사업을 일구었거니 생각했는데, 창업 후 지금까지 하루에 4시간 이상 잠을 자 본 일이 없다고 했다. 이유는 예전 급여생활자일 때는 자신만 생각하면 되었는데, 지금은 회사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 많아 그들을 책임져야만 했기 때문이라 한다.
제일 힘든 날이 월급날이고, 웬 급여일이 그렇게도 빨리 다가오는지, 주고 나면 금방 또다시 다가오더라고 회상했다. 그럼에도 친구들과 함께하면 그래도 내가 잘 벌지 않냐며 비싼 음식도 잘 대접하곤 했었다. IMF 구제금융의 그 환란에도 잘 견디어냈는데, 2025년의 경제 상황이 그에게는 녹록치 않았나 보다. 끝내 폐업 절차를 밟고 있으며, 회사를 인수할 사람을 찾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 마음이 너무 무거워서 친구를 걱정하다 건강마저 잃게 될까 염려했다. 이제 60대 중반, 다시 복구도 쉽지는 않아 보였다.
착잡한 마음에 유튜브를 보는데 들려오는 귀에 익은 노래. "가지말라고 가지말라고 애원하며 잡았었는데 돌아섰던 그 사람은 무정했던 당신이지요. 가지말라고. 가지말라고.." 가왕 조용필의 앳딘 목소리가 들려왔다. 20대 약관의 조용필씨가 평생을 쩌렁쩌렁 울리며 자신의 목소리로 국민과 함께했다. 이제는 그도 70이 가까운 노인이 되었을 것이지만, 그의 정열로 모두의 행복한 시절을 만들었듯, 친구도 그의 열정으로 평생을 멋있게 잘 지냈다. 막판 어려움에 봉착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잊지 못할 수많은 추억을 아름답게 간직하고 공유하는 친구였다.
학창 시절 성문종합영어 본문에 나온 한 마디가 생각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무엇을 가졌는지가 아니고, 그가 누구인가이다." 잃어버린 법인회사보다 평생 살아오며 그가 추구해 온 가치가 바로 그의 삶의 흔적, 인생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지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