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태 공학박사·라이프기자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는 그렇게 울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라는 시를 본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 낙엽이 지는 가을이 되니 한국인이 좋아한다는 시집을 찾았다. 문득,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교과서에도 실린 미당 서정주 님의 ‘국화 옆에서’를 읽게 되었다. 왜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그렇게 울었을까? 답은 불안정한 방전현상이 부른 번개 때문이다. 하늘 위쪽에는 적란운이라는 매우 큰 구름이 있는데, 아래에서 따뜻한 공기가 상승하고 위에서는 차가운 공기가 내려오며 빠르게 성장한다. 이 때 구름내부에는 물방울과 얼음 알갱이, 눈송이 같은 작은 입자들이 있어서 서로 같은 입자끼리 강하게 충돌한다.

구름 아래쪽에는 음전하가 많이 쌓이면, 지표면에는 자연스럽게 양전하가 모인다. 이 불안한 상태를 없애려 어느 순간, 전기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일어나는 방전현상이 바로 ‘번개(Lightning)’다. 세상사는 이치가 그렇듯, 한 공간에 비슷한 입자끼리는 충돌하며 이 충돌과정에서 전하(전기)가 분리되어 각각의 전하가 쌓이는 것이다. 번개가 지나가는 통로의 공기는 3만도 이상 순식간에 가열된다. 이 뜨거운 공기가 급격히 팽창하면서 주변 공기를 밀어내고, 그 충격파가 내는 거대한 소리가 바로 ‘천둥(Thunder)’이다.

태양의 표면보다도 더 뜨거운 순간 방전되는 공기는 전리 상태가 되며 전기전도도가 증가한다. 방전으로 순간적인 과열이 일어나며 채널 주변의 공기가 초음속으로 팽창, 강력한 충격파도 생성한다. 우리가 멀리서 “우르르, 쾅쾅”하고 듣는 충격파, 그 소리가 천둥인 셈이다. 또한 우리가 느끼기에 천둥과 번개가 시간 차를 두고 들리는 것은, 빛과 소리의 속도 차 때문이다. 소리의 속도는 초당 340여 미터밖에 나가지 않지만, 빛의 속도는 초당 약 30만 킬로미터를 달려가기 때문에 빛이 번쩍인 다음 한 참 뒤에나 우르르 쾅하고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소리는 지각 대장인 셈이다.

이렇듯 천둥과 번개는 시의 소재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좋은 역할도 한다. 번개는 공기 중의 질소 분자를 분해해 식물이 사용할 수 있게 만든다. 강한 에너지를 이용해 공기 중의 질소를 분해해 질산염 형태로 변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질산염이 비를 타고 토양으로 내려가 식물의 성정에 필요한 필수 비료 성분이 된다. 번개는 지구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천연 비료공장’이다. 또한 번개의 높은 에너지로 만들어진 활성 산소 라디칼들은 공기 중의 일부 오염물질과 반응, 분해해 작지만 자연의 정화 작용에 기여한다.

자연 번개는 때때로 산불을 일으켜 미워하기도 하지만, 단순한 자연 파괴라 보기보다는 오래된 나무를 제거하고 토양을 비옥하게 하며 새로운 식물과 생태계를 열어주는 자연 순환과정의 강력한 매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지구 환경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자연의 과정이 ‘천둥과 번개’인 것이다. 번개는 폭풍의 구조 연구에 중요한 진단 도구가 되며 최근 뜨겁게 부상하는 플라즈마 물리학 실험의 자연실험실로도 그 중요도가 높다.

천둥은 들판을 비우는 가을의 북소리처럼 계절의 문을 천천히 닫는다. 바람에 실려 내려온 계절의 통보인 셈인데, 이제 곧 추위가 찾아온다는 자연의 낮은 경고음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번개는 하늘에 떨어진 부서진 별의 조각들이 튀어 오르는 불꽃과도 같다. 바람은 차갑고 하늘은 낮아지며, 번개는 순식간에 사라지지만 천둥은 남아 들판과 산허리를 울린다. 그러니 가을의 천둥과 번개는 자연이 만들어낸 계절과 변화의 필연이라고 알려주는 선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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