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술 대구지방보훈청 청장

▲ 김종술 대구지방보훈청장. 대구보훈청 제공종술 대구지방보훈청장. 대구보훈청 제공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는 전쟁의 비극을 압축한 장면이 있다. 총탄이 쏟아지는 전장에서 형을 살리기 위해 몸을 돌리는 동생 진석. 두 형제의 발끝에서 펄럭이던 태극기는, 나라가 가장 흔들리던 순간에도 누군가는 끝까지 누군가를 지켜냈다는 사실을 말없이 증언한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 숨결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구보훈청이 지키는 것은 바로 이 기억이며, 국가가 세워온 오래된 약속이다.

◇ 보훈은 혜택이 아니라 국가의 의무
보훈정책의 출발점은 ‘지원’이 아니라 ‘책임’이다. 대구보훈청은 국가유공자 등록 심사부터 연금, 의료·요양, 교육·주거·고용 지원까지 한 사람의 삶 전체를 살피는 행정을 이어가고 있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결국 유공자의 일상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은 이런 세밀한 행정에서 나온다.

고령 생존유공자를 직접 찾아 생활환경을 재점검하고, 출입문을 넓혀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게 바꿔드린 일은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남겼다. 오래된 보상 문제를 서류가 아닌 ‘사람’으로 다시 확인해 풀어낸 사례도 있었다. 현장에서 듣지 않았다면 놓칠 사연이었다.

대구보훈청은 고령 보훈가족을 위한 ‘생활권 중심 서비스’를 확장하고 있다. 상담, 주거개선, 복지 연계를 분리된 사업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 지원 대상을 ‘행정의 수혜자’가 아니라 ‘내 부모님처럼 모시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방식이다.

기억사업도 넓어지고 있다.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 청소년 보훈교육, 신암선열공원·대구독립운동기념관 중심 프로그램 등은 보훈을 ‘기념일 행사’에서 ‘세대 간 기억의 연결’로 확장시키고 있다. 학생들의 헌화와 청년들의 기록 정리는 보훈의 씨앗이 도시 곳곳으로 스며드는 과정이다.

◇ 지역사회가 함께할 때 보훈은 ‘현재의 힘’이 된다
보훈은 한 기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대구보훈청은 지자체와 협업해 복지기관·의료기관·행정복지센터를 하나의 흐름으로 묶으며, 보훈가족의 생활 문제를 ‘개별 민원’이 아니라 ‘지역이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로 확장해왔다. 생활지원과 의료 연계가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는 지역 공동체가 보훈행정의 또 하나의 축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학교와 대학도 중요한 동반자다. 현장수업, 보훈캠프, 청년 참여형 프로그램이 확대되며 보훈의 가치가 미래 세대의 언어로 다시 번역되고 있다. 지역 기업과 협력한 보훈가족 일자리 연계도 조용하지만 꾸준한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보훈이 지역경제와 일상의 안전망 속으로 스며드는 변화다.

아브라함 링컨은 말했다. “국가가 이들을 기억하는 한, 그들의 희생은 사라지지 않는다.”
보훈은 과거를 떠올리는 절차가 아니라 오늘의 일상을 지탱하는 국가의 의무다. 대구보훈청이 걸어온 시간은 화려한 사업보다 한 사람을 더 깊이 살피는 행정이 어떤 변화를 만드는지 보여주는 조용한 증명이었다. 국가는 잊지 않을 때 더 단단해진다. 그 원칙 위에서 대구의 보훈은 오늘도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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