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우 대구신용보증재단 이사장

▲ 박진우 대구신용보증재단 이사장. 대구신용보증재단 제공
중세 유럽의 상업조합인 길드(Guild)는 한 상인의 실패가 공동체 전체의 몰락으로 번지지 않도록 위험을 함께 짊어졌다. 누군가가 흔들릴 때 가장 먼저 손을 내밀던 이 오래된 지혜는 오늘의 경제 환경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대구 지역 소상공인을 지키는 대구신용보증재단이 그 전통을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이어가고 있다.

◇ 장기 불황 속 골목을 지키다
불황은 통계보다 먼저 골목에서 드러난다. 점심시간인데도 빈 테이블이 줄지 않고, 한 달 새 임대 현수막이 더 붙었다는 사실로 경기의 한기를 읽는다. 고금리와 소비 위축은 숫자로 보기 전에 ‘현장의 침묵’으로 먼저 다가온다. 이런 시기에는 거창한 구호보다 ‘오늘을 버티는 힘’이 절실하다.

은행이 한걸음 물러설 때, 신용보증을 통해 한걸음 앞으로 나서는 기관이 있다. 대구신용보증재단은 ‘보증’이라는 이름으로 한 번 더 기회를 만들어낸다. 문을 닫으려던 가게가 다시 불을 밝히게 만드는 일, 이 조용한 개입이야말로 장기 불황 속 지역경제가 스스로 무너지지 않도록 붙드는 지지대다.

정부가 최근 강조하는 ‘사람 중심의 경제’도 같은 맥락이다. 경제의 본질은 결국 사람의 일에 있고, 골목경제는 그 일의 땀으로 돌아간다. 대구신용보증재단이 그 땀의 가치를 지키는 이유다. 한 사람의 일이 지켜져야 한 가정이 서고, 한 가게의 등이 켜져야 지역의 숨이 이어진다. 그래서 신용은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삶을 이어주는 힘’이며, 보증은 그 힘을 연결하는 다리다.

◇ 보증서 한 장이 도시를 회복시킨다
대구신용보증재단의 역할은 단순히 대출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은행이 보지 못한 위험을 대신 떠안아 소상공인이 다시 일어설 길을 여는 것이다. 지난해 폐업 기로에 섰던 가게들이 재단의 문을 두드리고 영업을 재개했고, 청년 창업자들은 첫 장비를 들여놓으며 새 출발을 준비했다. 이 작은 회복들이 도시의 생명력을 지탱한다.

경제 위기는 거대한 붕괴로 오기보다 ‘서서히 마르는 골목의 숨’에서 먼저 나타난다. 그래서 지역을 살리는 일은 거대한 발걸음이 아닌, 가장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한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다. 대구신용보증재단이 바로 그 지점에 있다. 가게의 문이 닫히지 않도록, 골목의 불빛이 꺼지지 않도록, 다시 시작할 시간을 확보하게 하는 것이다. 그 시간이 모여 도시의 내일이 된다.

◇ 작은 빛 하나가 골목을 지킨다
조선 시대 진휼청은 흉년이 들면 백성의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가장 먼저 움직였다. 그날 창고가 열리던 순간 사람들은 물자보다 더 큰 ‘공동체의 의지’를 목격했다. 오늘의 신용보증도 그 마음과 다르지 않다. 대구신용보증재단이 소상공인이 쓰러지지 않도록 조용히 받쳐주는 일, 그 작은 손길이 도시의 생계를 지켜낸다.

대구신용보증재단은 불황 속에서 골목의 진휼청이 되어, 문 닫기 직전의 생업에 다시 불을 켜주는 손이 되려 한다. 그렇게 골목의 한 불빛을 지키는 일이 결국 한 도시의 내일을 지키는 일임을 우리는 오래된 기록과 오늘의 현실에서 다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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