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국내 영화계 중심 키워드는 단연 멀티캐스팅이다. 올해 개봉된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로는 최초로 관객 300만을 넘긴 영화 ‘신의 한 수’부터, 개봉을 차례차례 앞두고 있는 ‘군도 : 민란의 시대’(이하 ‘군도’), ‘명량’,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 ‘해무’까지 멀티캐스팅을 앞세워 대작 영화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그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군도’의 멀티캐스팅 활용법이다.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베일은 벗은 ‘군도’는 멀티캐스팅의 이점을 제대로 살린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군도’는 윤종빈 감독이 그의 페르소나 하정우와 다시 의기투합했다는 점과, 강동원의 4년 만의 복귀작이라는 데서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이외에 배우 이성민, 이경영, 조진웅, 마동석, 윤지혜, 정만식, 김성균 등이 출연해 화려한 라인업을 완성했다.
▲(사진) 영화 해무, 군도, 해적포스터 |
‘군도’ 중심축을 이끄는 하정우는 예상과 달리 힘을 빼고 연기에 임했다. 각 캐릭터의 매력이 살아나야하는 극의 특성상 인물 간의 화학작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극 중 천한 백정 돌무치에서 군도 무리 에이스로 거듭나는 도치 역으로 등장한다. 그는 민머리에 쌍칼을 휘두르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이미지와 달리, 어눌하고 어리숙한 의외의 매력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정우의 배려가 묻어나는 도치 캐릭터는 여타 캐릭터의 매력에 몰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이는 멀티캐스팅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일 터다. 백성의 적으로 등장하는 조윤(강동원 분)을 비롯해 군도 무리 두목인 대호(이성민 분),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유사(이경영 분), 위장 작전 전략가 태기(조진웅 분), 행동파 천보(마동석 분), 명궁 마향(윤지혜 분)까지 각 캐릭터를 단순 조연에 그치지 않도록 애쓴 연출력이 돋보였다. 특히 태기, 천보, 마향은 각각 책략가, 괴력가, 명궁이라는 특징을 잘 드러냈다.
반면 2014년 상반기 기대작이었던 ‘역린’은 화려한 멀티캐스팅이 꼭 필요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자아내는 영화로 전락했다. ‘역린’은 각 캐릭터의 매력보다 사연에 충실하다 보니 기나긴 러닝타임이 지루해지는 역효과를 낳았다. 극 초반부터 정조(현빈 분)외에 상책(정재영 분)과 살수(조정석 분)의 에피소드가 교차 편집되고 그 사이사이 광백(조재현 분), 정순왕후(한지민 분), 강월혜(정은채 분), 혜경궁 홍씨(김성령 분)의 이야기가 삽입되다 보니 산만해질 수밖에 없는 영화가 됐던 것. 캐릭터에 미시적으로 접근해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이루려 했던 극작법이 실패로 돌아온 셈이다.
‘신의 한 수’는 정우성을 제외한 주변 캐릭터들을 단순 조연으로 전락시켰다. 캐릭터의 대한 내러티브가 친절하지 못한 탓이다. ‘역린’과 달리 내러티브의 비중을 줄인 것이 외려 독이 됐다. 일찍이 프로 세계에 입문했던 배꼽(이시영 분)이 돌연 은퇴를 선언했던 이유를 단순 대사로 처리한 점이 그렇다. 배꼽은 태석(정우성 분)과 긴밀한 관계로 발전되는 캐릭터인 만큼 그의 매력에 몰입할 여지를 남겨 줬어야했다. 절대 악 존재인 살수(이범수 분)에 대한 배려도 부족하다. 살수에게 연민을 느껴볼 여지를 마련해줬더라면, 한층 입체적인 캐릭터로 그려졌을지 모를 일이다. ‘신의 한 수’는 그렇게 멀티캐스팅의 이점을 살리기보다 정우성을 위한, 정우성에 의한 영화가 되기로 결심한 모양새였다.
‘군도’는 도치 캐릭터를 미시적으로 그런 영화가 아니다. 그의 비극적 사연에 집중하지도, 그를 ‘군도’의 화려한 독무대에 올려놓지도 않았다. 도치와 그를 둘러싼 각 인물들의 모습을 거시적으로 그리면서 ‘평범한 사람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영화의 메시지를 완성시켰다. 멀티캐스팅이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도 많다’는 미덕에 충실해야한다는 명분이 있다. 지난 21일 공개된 ‘명량’에 이어 아직 베일을 벗지 못한 ‘해적’, ‘해무’ 역시 멀티캐스팅의 이점을 제대로 살린 영화가 될 수 있을지 기대되는 바이다. 오는 23일 개봉.

▲(사진) 영화 해무, 군도, 해적포스터